교회를 개척하여지만 2~3년이 지나도록 성장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목회자가 많습니다. 개척을 시작한지 여러해가 지나도록 자립할 정도로 교회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목회자는 아래와 같은 부분들을 솔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가
목회자가 된 사람은 누구나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그 길로 들어왔다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소명없이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교단주의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교단이 정하는 규정에 하자가 없으면 누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회자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소명에 대한 검증은 없습니다. 소명에 대한 부분은 자신의 몫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명없는 목회자가 어디있겠느냐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사실 소명없는 다수의 사역자가 사역의 현장으로 나오고 그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가혹한 고통을 감수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종을 부르실 때 반드시 계획을 가지고 부르십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에 해당하는 종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이 먼저 서고 그 뜻을 이룰 종을 선택하여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종에게 반드시 그 계획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 즉 소명입니다.
주님은 부르실 때 이를 확증하는 증거를 줍니다. 부르심에 따른 증거는 적어도 2가지 이상입니다. 이는 객관적인 것(예언 자로회 등을 통한 예언)과 주관적인 것(주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여지는 증거들)을 포함합니다. 주님이 부르심을 그 종이 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증거가 없다면 그 부르심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감격해서 자원하여 주의 일꾼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세속적인 직업으로 생각하고 목회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의 권유로 인해서 목회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그 목회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목회자들이 통상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잘하면 칭찬이 있겠지만 잘못하면 버림을 받습니다.
2. 비전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사역의 초기에까지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듯 합니다. 1차 전도 여행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서 이해했다고 봅니다. 이처럼 비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음을 봅니다. 성공한 사역자들의 간증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비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사역의 성공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온 힘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처음 자신에게 비전을 보여주실 때에는 매우 포괄적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의 비전을 주어 자신을 선교사로 세우겠다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시다. 선교사라는 비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차츰 그 범위가 축소되면서 구체적으로 그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점점 주님이 원하시는 선교사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3. 주님의 때에 사역을 시작하였는가
주님의 정하신 때를 알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님이 그 때를 알려주지 않으면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역자들이 성급함으로 인해 주님의 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서둘러 행동함으로써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주님의 때에 앞서서 여러번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 행동하였다가 실패하게 되면 그에 따라 자신감이 상실됩니다. 주님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용기가 사라집니다. 주님은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실패해서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열정을 안으로 삭이면서 주님의 때를 순종함으로써 기다리는 종을 원합니다.
에너지를 안으로 비축해가면서 담대함을 쌓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번 섣불리 나섰다가 힘을 빼고 축늘어져 있는 것은 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힘빠진 사람의 모습이지요. 자기의 의지를 접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과 힘이 빠져 의기소침해서 주님 앞에서 무기력한 것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실패를 통해서 주님을 배웁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자기 멋대로 행동해서 실패하는 경우는 오히려 손해가 많습니다.
4. 주님이 원하는 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가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 간다는 것이 사역의 성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선한 판단에 따라 아시아로 가기를 원하였지만 이는 주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바울은 자신의 선한 뜻이 주님에게는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칠 고난을 예언했지만 담대하게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고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이 원하는 곳에서 사역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판단하지 않고 주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장소를 지정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 결정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5. 주님이 정해주시는 동역자를 만났는가
주의 사역은 혼자만의 사역이 아닙니다. 반드시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조용기목사에게는 최자실목사가 동역자였습니다. 조목사는 최목사를 만남으로써 사역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사역자는 자신의 독단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로 견제하고 돕는 동역자를 주님이 붙여 줍니다. 동역자를 만나는 것은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동역자를 만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엘리야와 엘리사, 바울과 실라 등과 같이 주의 성공한 사역자에게는 훌륭한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동역자는 어려울 때 도움이 되며 평한할 때는 견제자가 되어 사역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합니다.
이 밖에도 고려할 것들이 개인에 따라 많이 있겠지만 이상의 사항들은 우선해서 점검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사항들 가운데 무시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회개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지해서 이런 점들을 깨닫지 못했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 새롭게 결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소명이 없는 사역자는 자신이 무지해서 소명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를 철저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르심은 사역의 첫단추와 같습니다. 막연하게 주님이 불러주셨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사역은 주님의 일이며 많은 성도들의 생명을 다루는 심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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